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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지(醍醐寺)의 역사・연표

다이고지(醍醐寺)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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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지(醍醐寺)의 역사는 쇼보리겐(聖寶理源) 대사가 죠간(貞觀) 16년( 874년)에 가미다이고산(上醍醐山)의 산신령인 요코(横尾) 명신(明神)의 영험한 힘을 입어 다이고수(醍醐水)라는 신성한 샘을 얻었고, 소당우(小堂宇)를 건립해 준지관음상(准胝觀音像)과 여의륜관음상(如意輪觀音像)을 안치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후, 다이고(醍醐)천황, 수자쿠(朱雀)천황, 무라카미(村上)천황의 신앙에 힘입어 엔기(延喜) 7년(907년)에는 다이고천황의 기원으로 약사당(薬師堂)이 건립되었으며, 오대당(五大堂)도 건립됨에 따라 가미다이고(上醍醐)의 가람(伽藍)이 완성되었다.  이어서 시모다이고(下醍醐)의 부지에 가람(伽藍)을 건립하려는 계획이 세워지고, 엔쵸(延長) 4년(926년)에 석가당(釈迦堂)이 건립되고, 텐랴쿠(天暦) 5년(951년)에 5층탑이 세워져 시모가람(下伽藍)가 완성되었다.

그 후, 다이고지(醍醐寺)는 진언종(眞言宗) 오노류(小野流)의 중심사원으로 불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정권의 중심에 있었던 권력가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있어, 예를 들어 후지와라(藤原)씨 가문의 세력에 이어서 커다란 권력을 쥐고 있던 미나모토 도시후사(源俊房) 일가의 사람들이 여러 대에 걸쳐 다이고지의 주지승을 지냈다.

리겐대사(理源大師) 좌상(목조)

리겐대사(理源大師) 목조좌상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중요 문화재)

개산당(開山堂)건립 당시에는 다이고지(醍醐寺) 초대 주지승인 간겐(觀賢)이 만든 쇼보상(聖宝像)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개산당의 소실과 함께 불타 없어져버렸다. 현재의 작품은 가마쿠라시대에 개산당이 건립될때에 새롭게 만들어진것이다.
나무 쪽모이세공(여러조각의 나무를 모아서 하나의 목조각을 만드는 기법)에 색채를 가미한 목조상.

5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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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후사(俊房)의 아들인 쇼카쿠(勝覺)가 주지승이었던 때에는 경내에 수많은 가람이 지어지고, 에큐(永久) 3년(1115년)에 삼보원(三寶院)이 건립되어 다이고지 발전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그 후, 융성을 거듭한 다이고지(醍醐寺)도 오랜 세월동안 몇번의 화재와, 오닌(應仁), 분메(文明)의 대란의 여파에 의해 시모가람당우(下伽藍堂宇)는 전소되었지만, 다행이 5층탑만은 난을 모면해 건립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가미다이고(上醍醐), 준지당(准胝堂)은 “서국 제11번 순례지(西國第11番巡禮地)”로, 그리고 5대당(大堂)은 “오대력(五大力) 보살” 신앙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도 변함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후지와라(藤原)정권 말기부터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1192년~1333년)에 걸쳐서는 정치적 변동와는 무관하게 오노법류(小野法流), 종교학문 등 학문이 충실하게 연구된 시기였다. 그리고 우선 다이고지(醍醐寺)의 역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이고 잡사기(醍醐雑史記)”라는 역사서 15권이 케엔(慶延)에 의해 편찬되었으며, 수학연구의 성과의 일부분으로 현재에도 다수의 밀교(密敎)화집, 불교경전 등과 함께 불상연구를 위해 그려진 도상초(圖像抄)와 백묘도상(白描圖像)이 많이 남아았다.

남북조시대(1336~1392)에는 다이고지(醍醐寺)내부에 고다이고(後醍醐) 천황과 승려 코신(弘眞, 文觀僧正)가 당시의 실권자인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와 뛰어난 정치적 협상으로 2개의 종파로 분리시킨 후, 서로간의 대립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그 당시의 정치적 긴장상태를 나타내는 자료가 몇개 남아있다.

특히,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람의 부흥, 사찰문의 정비에 커다란 힘을 쏟았던 사람은 오에(應永1394~1428), 에쿄(永享1429~1441)시대의 주지승이었던 만제이 준삼후(滿濟准后)와 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 16세기 후반)의 기엔 준삼후(義演准后)였다.

5층탑

5층탑

헤이안(平安) 시대(국보)

다이고(醍醐) 천황의 명복을 빌기위해 수자쿠(朱雀)천황이 건립을 시작해, 무라카미(村上)천황 텐려쿠(天歴)5년(951년)에 완성되었다. 교토(京都)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내부의 벽화는 일본 밀교회화의 원류를 이루고있다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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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서원 表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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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사람의 일기를 통해 그들의 대외적인 활동을 대략 알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들이 문화재 보존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이서(裏書)와 오서(奧書)에 잘 나타나있다. 또한, 기엔주고(義演准后)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친분이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의 힘을 빌려 가람(伽藍), 삼보원전사(三寶院殿舍), 정원의 부흥을 이룸과 동시에 당대의 영웅의 최후를 장식한 최고의 만찬인 다이고(醍醐)의 벗꽃놀이를 개최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에 들어서서 수험도(修驗道) 중흥의 아버지인 쇼보(聖寶)에 의해 계승된 삼보원(三寶院)에 속해 산에서 수험(修驗)하는 자들을 에도막부(江戶幕府)로부터 당산파(當山派)라는 종파로 인정받아, 주지승인 코켄(高賢)이 깊은 산중에 들어가 수행을 함으로서 다이고(醍醐)의 교풍이 널리 알려졌다. 현재에도 그 법류의 전통을 이어받아 “하나쿠(花供)”라는 수행을 하고 있다.

에도말기의 혼란과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커다란 변혁의 흐름은, 불교 각 종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수많은 소규모의 사원이 없어지고, 가람(伽藍)과 중심적인 사원만이 남아있으며, 현재에는 사원건축의 중요한 건축물들의 상당수가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다이고지(醍醐寺)의 십수만점의 보물은 영보관(靈寶館)에 보관되어 봄과 가을에 한번씩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표서원(表書院, 국보)

표서원(表書院, 국보)

정원을 마주보고 세워진 표서원은, 서원이라는 느낌보다는 마루쪽에 난간을 만들어 서남쪽에 천전(泉殿)을 만들었으며, 헤이안시대의 침전조(寝殿造) 양식을 도입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표서원의 동쪽에 억새지붕 건축물인 순정관(純淨觀, 중요문화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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